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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는대로 독서일지

[캉교 타니에] 고요를 배우다, 불필요한 것들을 놓아버리는 연습

 

 

 

 

전자책으로 읽음. 

 

 

Kankyo Tannier

캉교 타니에

https://www.dailyzen.fr/en/meditation/#.XpvFPpMzYcg

 

dailyzen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선불교 승려이다. 15년 넘게 알자스 지방 사찰에 살다 사찰 근처 숲 속에 정착하여 살고 있으며 명상 지도, 치유사로 활동하고 있다. 

 

책 전체의 문맥의 흐름이 정리되어있지 않고 산만하게 늘어져 있어 그렇게 명쾌하게 읽히지는 않았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나 문구들은 있지만, 머릿속에서 정확하게 그녀가 고요를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정리되지 않는다. 

 

책 서두에 그녀는 이야기한다. 모방하라.

신경언어학 원리 가운데 하나인 모델화, 원하는 것에 다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을 모방하는 '이론의 모델화'를 활용하라고. 그리고 반복하라. 인간의 모든 지혜는 반복하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뇌는 반복을 통해 배우고 어떤 동작이나 행위를 거듭하면 뉴런들 간의 접속이 강화된다. 아름다운 뇌 지형을 만들어보자. 

 

침묵이란?

침묵을 생각 할 때 캉교는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이 생각난다고 한다. 바람도, 소리도 없고 붉은 모래언덕만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사막. 할 일이 아무것도 없고, 과거도 미래도 없이 모든 것이 그냥 그대로 그곳에 있는 사막.

 

고독은 자기 자신과 다시 이어지는 느낌이다. 우리 내면과 이어지기 위해 공간과 시간을 갖는 것. 

 

고요로 가기 위해서는 자각과 몰입이 필요하다. 그래서 고요하기 위해서는 주변을 더 샅샅이 자각하고 몰입해야 한다. 주변의 소리를 더 많이 들을수록 지금 이 순간과, 침묵과 깊이 연결된다. 지금 어디에 있든 당신을 둘러싼 소리를 지각하라. 거기에 더해 내면의 소리를 온전히 의식하며 그것이 지나가도록 내버려 둔다. 그 내면의 소리는 어떤 위치에서 들리는가? 볼륨 조절을 해보아라. 목소리가 들려오는 위치를 옮겨보아라. 오른쪽 귀에서 왼쪽으로, 머리 뒤쪽에서 목구멍으로...

 

조용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존재 상태는 쉽게 전염되며, 그들의 영향으로 자기 내면의 리듬이 변한 걸 느끼는 경우가 많다. 동물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캉교의 책장에는 꿀벌부터 돼지, 특대까지 '동물의 삶'에 관한 책이 여러 권이 있다고 한다. 동물은 우리를 흙으로 이끄는 안내인.

 

특정 감정을 곱씹으며 키워 나가길 멈춘다면 감정은 모든 것이 나타났다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우리를 가로지르는 모든 감정을 판단하지 않고, 거부하지 않고, 보존하지도 않은 채 받아들여라. 감정은 e movere라는 어원처럼 하나의 움직임. 몸속의 감정을 부추겨 그것이 자발적으로 천천히 원형을 그리며 돌게 하라. 움직임에 가속도를 붙이고 그 크기가 커지는 것을 느껴라. 부정적인 감정을 즐거운 감정을 맞바꾸어 보아라. 부정적인 감정은 정체되어 꼼짝하지 않으려 하겠지만, 꾸준히 추진력을 주어 움직이게 한 후 해빙시켜라. 내면의 흐름은 몸의 흐름을 반영한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생각을 하늘의 조각구름처럼 흘러가게 하라. 생각을 사물처럼, 자신에게서 조금 떨어뜨려 놓고 연구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라. 생각은 세가지 형태를 띤다: 이미지, 소리, 물리적인 감각. 

>> 감정자체가 움직임이라는 것도, 부정적인 감정이 잘 움직이지 않으려는 시각이 참 신선했다. 생각해보면 트라우마나 인생의 힘든 사건들과 관련된 감정들은 몸의 어떤 부분에 고정되어 떠나지 않고 점점 굳어가는 느낌이 있다. 그것을 움직여서 리듬속으로 보낸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큰 도움이 된다. 

 

눈은 늘 무언가를 보고 있다. 그리고 매일 같이 보는 휴대폰, 컴퓨터 스크린...우리는 머물고 있는 장소를 잊는다. 몸을 잊는다. 감각을 잃는다. 가상현실에 붙들려 우리의 결핍과 정서적 취약점을 되살리고, 남들과 끊임없이 비교한다. 무언가를 획득하려는 의지가 눈에 있다. 빛 공해와 스크린의 공격은 우리를 몸 밖 외부로 물어간다. 몸에 현존하는 일은 우리가 현재 순간에 직접 개입하는 유일한 현존이다. 우리 삶을 예술 작품이라 여기고 한 동장 한 동자가 창조해 내야 할 안무처럼 접근하라. 평온하게 조금씩 이상을 향해 걸어가라. 모든 것은 타이밍의 문제. 잠재적인 한계를 받아들이고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을 쫓아 달리는 일은 그만두자. 

 

이름=한계

사회적인 말은 재확인의 시도이다. 우리는 이름을 붙이며 사물을 증명한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한계를 정한다. 틀을 만들고, 명명, 규정, 자기 의견을 통해 선입견을 갖게 된다. 침묵을 되찾는다면 언어=이름표 없이도 우리는 세상을 순수한 가능성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즐거운 무지를 탐험하듯이 말이다. 말의 침묵을 수행하는 일은 남들이 우리를 봐주고, 우리의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욕구에서 자유롭게 한다. 

 

침묵과 고요를 진정으로 경험해보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던 많은 것이 하찮아 보이고, 삶 자체가 다른 입체감을 띨 것이다. 

 

윤리적인 구매에 대해

탁닛한 스님: 고통에서 나온 물건을 소비하는 일은 고통의 씨앗을 당신에게 심는 것.